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파티마 왕조 (문단 편집) === 전성기 === ||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이슬람 아즈하르.jpg|width=100%]]}}} || || '''{{{#000 알 아즈하르 모스크 }}}''' || 969년 [[이집트]]를 정복하여 [[카이로]]를 건설하고 이곳으로 수도를 옮겼다. 카이로의 초창기 인구는 약 18,000명이었으나, 도시가 점차 북쪽으로 확장되면서 급격히 팽창해 약 20~30만 명에 달하게 되었다. 이는 당시 이슬람 세계 도시 중 가장 큰 규모였다. 또한 [[잔즈 반란]]을 거친 후 쇠퇴하기 시작한 이라크 지역은 10세기 중반 [[부와이 왕조]]의 침공으로 더욱 쇠락했고 인도양을 통해 이어진 해상 실크로드는 페르시아만 대신 홍해를 통하게 되어 이집트로 방향을 틀게 되었다. 7세기 초 동로마-사산 전쟁으로 아라비아 반도 서부의 [[히자즈]] 지역이 혜택을 본 것처럼 파티마 왕조 역시 반사 이익으로 번영할 수 있었다. 동시에 인도 아대륙에서 목화나 사탕수수 등의 상품 작물을 들여오면서 경제가 빠르게 성장했다. 서기 1000년 경 카이로는 카이펑(개봉), 콘스탄티노플 등과 함께 세계 최대의 도시였다. 파티마 왕조는 지중해와 인도양 양쪽에서 광범위한 무역망을 주도했고, 이집트의 농업을 발전시켜 이집트는 고대 이후 역사상 최대의 번영을 누리게 되었다. [[동로마 제국]]은 중흥기를 맞아 시리아를 수복하고 예루살렘까지 위협했지만, 파티마 왕조는 다마스쿠스를 탈환하고 시리아 남부를 점령하여, 동로마 제국의 남진을 저지했다. 이렇게 로마-파티마를 축으로 해서 [[함단 왕조]], [[마르완 왕조]] 등의 소국들이 공존했던 [[레반트]] 및 동지중해에서의 세력 균형이 튀르크계 수니파 [[셀주크 제국]]이 진출하는 11세기 중반까지 100년 가까이 유지되었다. 이 시기 파티마 왕조는 [[이베리아 반도]]와 [[메소포타미아]]~이란 고원을 제외한 이슬람권의 대부분을 지배하에 두면서 수니파 무슬림의 충성도 받아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